열린연구실

국가 표준에서 양자 혁명까지: 한 걸음 더 들어가 본 ‘초전도 양자컴퓨팅 시스템 연구단’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 탐방연구실 초전도 양자 컴퓨팅 시스템 연구단
  • 글 작성 퀀텀웨이브 학생 기자단 : 이성빈(서울대학교) / 김성은(연세대학교) / 박연수(연세대학교) / 김한결(광운대학교) / 이정우(한국과학기술원)

과학과 빵의 도시, 대전에는 항공우주, 원자력, 에너지, 국방 등 다양한 분야의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선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은 올해로 설립 50주년을 맞이하며,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 국가 표준의 기틀을 다져왔습니다.
KRISS는 길이, 질량, 시간, 전류, 온도, 물질량, 광도 - 총 7개의 SI 기본단위를 기준으로 측정의 표준을 마련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보다 정밀한 표준 확립을 위해 자연계의 기초상수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방식의 정의에도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준의 정밀성은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정밀한 표준은 과학기술 전반의 신뢰도와 정확도를 뒷받침하는 기반이자, 극한까지 정제된 측정 기술은 새로운 과학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KRISS는 이 같은 정밀 계측을 위해 광학, 원자, 초전도 등 다양한 물리 시스템에서 제어와 측정 기술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왔습니다.

특히, 원자 단위 수준의 불확실성을 제어하고 수십 억 분의 일 초 단위를 측정하는 이러한 기술은 양자 세계를 직접 다루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기반입니다. 다시 말해, 정밀 계측을 위한 표준 기술의 진보는 자연스럽게 양자 상태의 생성, 제어, 측정으로 이어졌고, 이는 곧 양자 기술 개발의 출발점이자 핵심 축이 된 것입니다.

그 결과는 초정밀 원자 시계, 중력계, 양자 자기장 센서 등 첨단 계측기술로 이어졌으며, 이는 곧 양자 과학기술의 핵심 원천기술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 발전의 중심에는 표준 과학연구원 내 '초전도 양자 시스템 연구단 (단장 이용호)'과 '양자 기술 연구소(소장 최재혁)'가 있습니다. 그 중 초전도 양자 시스템 연구단은 초전도 큐비트 기술을 기반으로 양자컴퓨터의 하드웨어 플랫폼을 개발하며, 국내 양자 컴퓨팅 연구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연구단 로비에는 초고진공, 극저온 환경에서 초전도 큐비트 시스템을 동작 시키기 위한 금색 반짝이는 샹들리에 같은 냉각 장치와 최신 연구 성과들이 전시되어 있어 방문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오늘은 차세대 양자 정보 기술의 심장부, 표준과학연구원의 초전도 양자 시스템 연구단을 직접 찾아가 그 첨단 연구 현장을 들여다봅니다.

SI 기본단위를 상징하는 7개 기둥의 KRISS 정문 (이미지 출처 : 한국표준과학연구원 )

초전도 큐비트 칩 & 연구단 로비에 전시된 초전도 양자컴퓨팅 냉각 시스템 (이미지 출처 :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은 국가 표준을 책임지는 기관으로, 광도·질량 표준, 원자 시계 등 정밀 측정 분야에서 세계적 위상을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양자역학적 현상을 측정 표준에 적극 활용하며, 나아가 초전도 기반 양자컴퓨팅 시스템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홍창기 선임연구원은 말했습니다. “저희 연구단은 2022년에 신설되었지만, KRISS에서는 이미 30년 넘게 조셉슨 접합(Josephson Junction) 기술을 연구해왔습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초전도 양자컴퓨터에 대한 수요 증가에 대응하고자 연구단이 발족되었습니다. 현재 책임연구원 1명, 선임연구원 5명, 책임기술원 1명, 선임기술원 4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KRISS 견학 학생들과 연구소를 설명해주시는 홍창기 선임연구원

표준과 양자의 만남

KRISS는 오랫동안 ‘측정 표준’을 정의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그렇다면 양자역학은 표준 연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오늘날 많은 측정 표준은 양자역학적 상수를 활용해 재정의됩니다. 예를 들어 미터는 광속을, 전압은 플랑크 상수와 양자 홀 효과를 이용해 정의하죠. 즉, 양자역학은 이미 표준 연구의 핵심에 있습니다. 다만 국민들이 체감하기는 어렵습니다. 일상에서 ‘갑자기 무언가 달라졌다’기보다는, 보이지 않게 정밀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양자컴퓨터의 현재

최근 대중 매체에서는 양자컴퓨터가 이미 물류, 화학 계산 등에 활용된다는 보도부터, 수백만 큐비트 없이는 아직 실용화는 멀었다는 의견까지 엇갈립니다. 이에 대해 현장에서 양자 컴퓨팅을 연구하는 홍창기 박사는 현재 개발중인 양자 컴퓨팅 기술 수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직 특정 플랫폼이 확실히 우위를 점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분야는 초전도 플랫폼입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죠. 한국에서도 다양한 플랫폼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저희 연구단은 초전도 기반 양자컴퓨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현재 20큐비트와 24큐비트 시스템을 연구 중이며, 칩은 성균관대와 협력해 제작하고 있습니다. 향후 플립칩이나 TSV(Through-Silicon Via) 기술은 UNIST와 협력하여 개발해 나갈 예정입니다.”

KRISS는 국가 표준 연구의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양자역학을 활용한 정밀 측정뿐 아니라 미래 양자컴퓨팅 기술 확보에도 도전하고 있다. 학생 기자단은 이번 취재를 통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표준과 양자가 이미 긴밀히 맞닿아 있으며, 한국의 양자컴퓨터 개발 역시 연구자들의 꾸준한 협력 속에서 차근차근 진전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20큐비트급 초전도 양자컴퓨팅 시스템

양자컴퓨터는 아직 수백만 큐비트의 완전한 오류보정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NISQ(노이즈가 있는 중간 규모 양자컴퓨터)’라는 과도기적 시대에서 점차 응용 가능성이 탐색되고 있다.
“예전에 고전 컴퓨터가 처음 등장했을 때 가장 먼저 큰 도약을 한 분야는 화학이었습니다. 양자컴퓨터도 마찬가지로 화학 분야에서 가장 먼저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대학 연구실에서는 대학원생, 학부생들이 모여 스터디 그룹을 꾸려 양자컴퓨터로 어떤 계산을 해볼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신약 개발, 금융, 컨설팅 등에서도 양자컴퓨터 활용 가능성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양자 이득, 언제 실현될까?

양자컴퓨터가 고전컴퓨터를 뛰어넘는 지점, 이른바 ‘양자 이득(Quantum Advantage)’은 언제쯤 실현될 수 있을까? “일부 알고리즘에서는 이미 양자컴퓨터가 고전컴퓨터를 능가했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특정한 문제에 국한된 것이고, 일반적인 상황에서 양자컴퓨터가 항상 빠르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고전 컴퓨터도 문제 유형에 따라 어떤 시스템이 빠를 수 있듯, 양자컴퓨터 역시 문제 정의에 따라 이미 우월할 수도 있고, 앞으로 더 많은 문제에서 강점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언제 보편적으로 양자 이득을 가진다’는 질문에는 아직 명확히 답하기 어렵습니다.”

글로벌 기업과 국가 연구소, 무엇이 다른가?

구글, IBM, IonQ, QuEra 등 글로벌 기업들은 초전도·이온트랩·중성원자 등 다양한 플랫폼에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주로 대학과 연구소 중심으로 기술 개발이 진행 중이다.

KRISS 연구실에서 20큐비트급 초전도체 양자컴퓨터를 점검하고 있는 연구원

“대기업은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될 경우 막대한 파급력을 기대하며 투자합니다. 동시에 기업 이미지 차원에서도 선도 기술 확보를 강조하죠. 반면 연구소의 역할은 조금 다릅니다. 대학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논문을 만들어낸다면, 연구소는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기반 기술을 책임지고 이어가는 곳입니다. 논문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국가가 기술적으로 종속되지 않기 위해 반드시 채워야 하는 영역을 담당하는 것이죠. 한국도 아직 선진 기업에 비해 따라가는 단계일 수 있지만, 지속적인 기술 축적을 통해 격차를 좁혀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학·연 협력으로 50큐비트 향해

KRISS는 국내 산학연 컨소시엄을 통해 초전도 양자컴퓨터 연구를 이끌고 있다.
“20큐비트, 50큐비트 양자컴퓨터 인프라 구축사업을 통해 성균관대(칩 개발), UNIST(플립칩 및 TSV 공정), KISTI(클라우드 서비스)와 협력하고 있습니다. KRISS는 주관기관으로 측정과 시스템 통합을 맡고 있구요. 올해 3월에는 20큐비트 칩 시험에 성공했고, 현재는 24큐비트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내년 말에는 50큐비트 시스템까지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큐비트의 T1, T2* 결맞음 시간 향상 연구도 진행 중입니다.”
초전도 큐비트 방식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투자가 집중된 분야지만, 극저온 유지·큐비트 간 간섭·오류율 관리 등 기술적 난제가 여전하다. KRISS는 이 중에서도 ‘측정 정확도’와 ‘칩 품질’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KRISS는 측정 기관이다 보니, 가장 중요한 초점은 측정입니다. 첫째, 측정 과정에서 한계가 없도록 하는 것, 둘째, 정확도를 높일 수 있는 앰프 개발, 셋째, 칩 자체의 품질 개선 — 이 세 가지 축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산학연 협력을 통해 큐비트 수 확대와 국제 협력 과제를 수행하며 균형 있게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초전도양자컴퓨팅시스템 연구단은 기술 국산화와 확장성 확보를 통해 국내 양자컴퓨팅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습니다. 연구단은 앞으로도 학계·산업계와의 협력을 강화하며, 세계적 수준의 양자컴퓨팅 시스템 구축이라는 도전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양자는 어렵지만 동시에 누구나 함께 도전할 수 있는 분야”라는 연구자의 말처럼, 앞으로도 많은 젊은 인재들과 연구자들이 이 길에 동참해 세계 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여 주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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